동서 지역의 사투리가 뒤엉켜 시끌벅적했던 주점과 횟집, 그리고 찻집은 그대로인데 수많은 발자국들은 썰물이 돼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것은 내년을 기약한 넓은 백사장과 그 앞을 오가는 작은 어선들뿐이다. 청춘들의 속삭임도 차곡차곡 모래밭에 묻고 추억의 계단을 오르는 시계처럼 바닷가 여름날은 그렇게 갔다. 출렁거리는 파도가 휩쓸고 간 낭만, 더위와 싸우던 거친 숨소리, 심장이라도 녹일 만큼 뜨겁던 젊은이들의 함성, 고막을 뒤흔든 색소폰 소리는 아직도 귓전을 울리지만 계절은 완연한 가을이다. 그 때, 그 바닷가, 풋풋한 살 내음 꼭꼭 숨기고 짧은 치마에 속살 드러낸 그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 가슴 후비 듯 청춘을 노래한 그 많은 젊음들은 또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리고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심장보다 더 붉은 가슴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갈망했던 꿈은 이뤄졌는지, 아니면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지, 데자뷰인 듯 아닌 듯 가난이 서럽다. 빛바랜 꿈, 녹이 슨 희망, 거기에 보잘 것 없는 몰골들, 누가 우리를 이 땅에 있게 했는가. 찌들대로 찌든 가난과 취업의 문턱에 좌절된 청춘들은 또 누가 이 땅에 내 몰았는가. 아무도 몰랐다. 세상의 벽이 이처럼 단단하고 세상이 이처럼 더러울 줄 흑수저들은 미처 몰랐다. 그래서 여름밤의 열정도 초가을의 희망도 낡을 대로 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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