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산물 시장에서 ‘꽃게’는 매출과 소비량 모두를 좌우하는 핵심 품목이다. 그러나 계절과 어획량에 따라 가격이 출렁이고, 유통 단계가 길어질수록 수익은 분산되는 구조는 오랫동안 산업의 한계로 지적돼 왔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보령수산업협동조합(보령수협), 어업회사법인 대보, 그리고 판매 전문 브랜드 신사꽃게당·학돌이네가 손을 잡았다.
지난달 체결된 ‘수산물 공급·가공·판매 통합 협력 MOU’는 단순한 납품 계약이 아니라, 생산부터 소비자 접점까지 하나의 체계로 묶는 통합 밸류체인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연간 1,000톤 공급망 구축…최대 300억 매출 기대
세 기관이 제시한 목표는 연간 약 1,000톤 규모의 꽃게 등 수산물 처리다. 예상 매출은 200억~300억 원 수준. 수치만 보면 대형 프로젝트이지만, 업계가 더 주목하는 대목은 ‘안정성’이다.
그동안 꽃게 시장은 어획량 변동에 따른 급격한 가격 등락, 중간 유통 단계에서의 마진 누수, 가공·판매 일정의 비 연동 등이 반복돼 왔다. 생산자는 제값을 받기 어려웠고, 소비자는 가격 변동을 감수해야 했다.
이번 협약은 연간 사용량을 기반으로 한 사전 물량 계획과 공급-제조-판매 일정의 정합화를 전제로 한다. 수급을 ‘예측’이 아닌 ‘계획’의 영역으로 옮기겠다는 시도다.
수산업 관계자는 “원물 확보 단계에서부터 가공·마케팅까지 설계된 협력은 국내 꽃게 산업에서 보기 드문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생산부터 마케팅까지…‘원스톱’ 통합 시스템 구축
각 주체의 역할은 비교적 명확하다. 보령수협은 국내산 꽃게 원물의 안정적 확보와 1차 선별·기초 가공을 담당하고 대보㈜는 밀키트·가공식품 개발 및 제조, 품질을 관리한다. 신사꽃게당·학돌이네는 온·오프라인 판로 확대 및 브랜드 운영, 마케팅 전략을 수립·가동한다.
핵심은 원물 판매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가공식품과 HMR(가정간편식) 중심의 고부가가치 상품군으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더 많이 파는 전략’이 아니라, 같은 꽃게라도 어떻게 가공하고 어떤 브랜드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전제에 기반 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모델이 성공할 경우, 지역 수산물 산업의 표준 사례로 확산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투명한 협력 체계로 ‘시장 병목현상’ 해소
세 기관은 연간 사용량, 제조 단가, 생산 일정 등을 실시간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수산업에서 정보는 종종 ‘비공개 자산’처럼 다뤄져 왔다. 그러나 이번 협약은 오히려 투명성을 효율성의 전제로 설정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따라서 공급 지연이나 재고 과잉 같은 병목현상을 줄이고, 가격 변동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있어 데이터 공유가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임석균 조합장 “수산업도 전략 산업이 돼야 한다”
이번 협력의 배경에는 보령수협을 이끄는 임석균 조합장의 방향 설정이 자리한다. 그는 수협의 역할을 ‘어획물 위탁 판매’에 한정하지 않고, 시장 주도형 조직으로의 전환을 강조해 왔다.
임 조합장은 “국내산 꽃게의 수급 안정화는 물론, 지역 수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수산업도 전략 산업으로 접근해야 지속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단기 실적 확대를 넘어, 안정적 공급 기반 확립, 가공·브랜드 경쟁력 강화, 지역 경제 파급 효과 확대를 동시에 고려한 구상으로 읽힌다.
꽃게는 오래전부터 한국인의 밥상에 오르던 식재료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제철 식품을 넘어, 가공·브랜드·유통 전략이 결합된 산업 자원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보령에서 시작된 이번 3자 협력은 한 지역 수협의 사업 확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수산업이 ‘어획 중심’에서 ‘구조 설계 중심’으로 이동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