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오랫동안 둥지를 틀었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조그만 2층집을 마련해 동대동 모처로 이사를 한 것은 지난 2014년 12월 말이었다. 말이 2층집이지 아래 위층 모두 해봐야 240여 ㎡에 지나지 않아 1층 상가도 작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1층 상가 33㎡는 와이프 미용실로 꾸미고 나머지는 월세라도 놓을 계획이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좀처럼 세가 나가지 않았다.
필자의 생활이라고 해봐야 반건달이나 다름없는 관계로 경제능력이 약하다보니 작은 상가나마 세가 나가야 했는데 문의조차 없었다. 이사를 하고 3개월 쯤 지나 와이프는 “은행 이자도 내야하고 여기저기 돈 나갈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닌데 당신은 땡전 한 푼 같다 주지 않으니 큰일”이라며 “경기도 안 좋고 어차피 가게 세도 나갈 것 같지 않으니 생맥주 장사라도 해야겠다.”고 투덜거렸다.
결혼 후 지금까지 와이프에게 기대어 살아온지라 대꾸보다 미안함이 앞서 필자는 볼멘소리를 뒤로하고 자리를 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또다시 와이프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빗진 것, 은행에서 대출을 좀 더 받아서 통닭집을 해야겠다. 아르바이트 아주머니 하나 두고 미용실 끝나면 같이 하면 되니까 크게 어려울 것도 없을 테구...”. 평소 와이프의 고집도 만만치 않은지라 결국은 생맥주집을 차리기로 결정했다.
인테리어에 필요한 대출도 받고, 외식업에 필요한 교육도 받았으며, 사업자등록증도 교부받았다. 영업장에 필요한 은행통장도 만들어야 했기에 대천농협을 찾았는데 그 곳에서 요즘에 보기 드문 ‘미소’를 만났다. 번호표 순번이 돼 창구 앞에 다가 섰을 때 가슴에 ‘신인경’이란 이름표와 그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주류 구매통장을 비롯해 안주구입 신용카드 발급을 위한 서류를 꾸미는 내내 그의 친절은 우리부부가 어색할 만큼 분에 넘치는 것이었고 업무도 능숙했다. 신용카드에 대한 각종 혜택과 알뜰 사용법 등 신인경씨의 고객서비스는 이른바 ‘청량음료’에 비교되지 않을 만큼 상큼했고 신선했다. 가슴으로 느낄만한 가치는 물론이고 가슴으로 간직할만한 충분한 가치와 뿌듯함이 있었다. 사무적인 말투나 가시적인 친절에서 나오는 미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나 기억에서 멀어졌던 신인경씨를 다시 만난 것은 1년을 조금 넘긴 지난 8일 오전, 오랜만에 대천농협을 방문했을 때다. ‘도란도란’이란 상호를 내걸고 아내가 그동안 장사를 했는데 하루는 “영업에 필요한 교육도 받아야하고 이것저것 처리할 일도 많아 사업자 명의를 바꿔야 할 것 같다며 당신 앞으로 돌렸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필자는 아내의 뜻을 수용했다. 때문에 처음처럼 신규 사업자 입장에서 다시 대천농협을 찾았는데 1년 전 같은 일을 처리했던 신인경씨가 그 자리에 있었다.
오전 8시를 갓 넘겼을 때라 고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필자는 신인경씨 창구로 다가가 ”지난해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같은 용무로 다시 방문하게 됐다“고 말을 건넸다. 물론 지역농협의 모든 직원이 친절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뛰어나지만 신인경씨를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돼 기뻤다. 그는 영업에 필요한 신용카드 상품을 권하는 동안에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친절과 미소를 잃지 않았으며, 기존의 상품보다 더 낳은 상품을 고르기에 분주했다.
카드사로 문의도 해보고, 어느 상품이 더 필자에게 맞춤형인지에 대한 비교 설명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미소와 친절 속에 용무가 마무리 돼 갈 때 그는 “카드가 발급되면 전화 드릴게요, 그런데 다음 주에 제가 혹시 휴가를 갈지 모르니까, 다른 직원을 통해 꼭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방세제 하나를 정성스럽게 두 손으로 건넸다. 그리고 부자 되길 기원한다는 덕담도 빼놓지 않았다.
세상은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시끄럽다. 정치·사회는 물론이고 교육·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가 조용할 날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해야할 것과 오랫동안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비록 그것이 작은 미소 하나, 이웃을 돌아보는 작은 관심 하나일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일상이 행복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오랫동안 주변에 자랑해야 할 것이 있다면 대천농협 신인경씨의 ‘친절과 미소’다. 그의 미소는 꾸밈이 없고, 친절은 결코 형식적이거나 의무적이지 않을 것 이라는 믿음 때문이다.